희망을 갖기 어려움

희망.

판도라가 제우스에게 받은 상자를 열었을 때, 세상으로 퍼져나간 재앙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항아리 안에 남았던 존재. 절망과 질병, 고통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 인간이 삶을 포기하지 않고 버텨낼 수 있게 돕는 마지막 선물이라고들 한다.

심리학에서는 희망을 막연한 감정이 아닌,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인지 체계로 정의한다. 스나이더의 희망 이론에 따르면 희망은 도달하고자 하는 명확한 목적지인 목표, 그 곳에 도달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과 대안을 찾아내는 능력인 경로 사고, 그리고 해낼 수 있다는 의지와 동기부여를 뜻하는 주체 사고라는 세 요소로 구성된다.

그렇다면, 지금의 내가 이 희망이라는 것을 품는 것은 과연 온당한 일일까.

첫 번째 단계인 ‘도달하고자 하는 명확한 목적지’ 자체가 애초에 도달 불가능한 곳이라면 어떻게 되는가. 물리적으로 가닿을 수 없는 목적지이기에 구체적인 경로와 대안은 무력해지고, 내가 해낼 수 있는 영역이 아니므로 동기부여조차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한다면, 그런 자격 미달의 사람이 희망이란 것을 가지는 것에는 대체 어떤 의미가 남아 있나.

그저 닥쳐온 현실의 고통과 눈앞에 예견된 재앙으로부터 시선을 돌리기 위해, 스스로 만들어낸 신기루에 불과한 것은 아닌가..

90.5%라는 확률. 지적장애 확률을 100%로 명시한 연구도 있다. 우리 순수하고 예쁜 아기가 남들처럼 생각하고, 인식하고, 소통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명제가 이미 변경 불가능한 미래로 확정된 것일까..

차라리 신체에 물리적인 이상이 있더라도 지적 능력이 온전하면 스스로를 돌볼 수 있는 방안을 차근히 함께 모색할텐데.. 왜 하필 이토록 잔인한 방향이어야 했을까.

내 아이만큼은 다를 것이라 애써 믿고 싶지만, 이미 수면 위로 명확히 드러난 월령 대비 심각한 인지 저하라는 성적표 앞에서는 그 어떤 기대도 힘을 잃고 만다. 이런 무력감과 절망감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 지 모르겠다..

Sun [WP]

상대적이며 주관적인 뇌피셜 백과사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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