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 출산기 (강남세브란스 산부인과 자연분만)

임신 33주.

출산이 다가오면서, 남편과 단둘이 보낼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이 점점 실감되기 시작될 즈음, 남편과 마지막으로 여수 여행을 갔다.

그 여행에서 어떤 일이 생길지는 꿈에도 모른 채..

여튼, 여수에 가서 맛있는 것도 먹고 재밌게 놀았다. 이건 나중에 시간이 되면 따로 올려야지.

그렇게 여수에 온 지 3일째 되는 날, 그러니까 8월 31일 일요일 오전. 아주 약간의 선홍색 피가 비쳤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게 바로 <이슬>이었다. 출산이 임박했다는 신호 중 하나가 이슬이라곤 책에서 읽었지만, 이슬이라는 이름이 너무 비직관적이라(이름 때문에 피가 아니라 투명한 액체일 줄 알음..) 이 피가 그 이슬일거라곤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그래서 별 거 아니라고 생각하고 넘겼었다.

여튼 그 날은 낮에 오빠랑 아쿠아플라넷에 갔는데, 걸음을 걸으며 발바닥을 디딜 때 밑이 아픈 느낌이 들길래 오빠에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아무래도 아기가 일찍 나올 것 같아”라고 말했었다. (물론 내가 생각한 ‘일찍’은 36~37주 정도였지 24시간 이내는 아니었음-_-)

[아쿠아플라넷에서의 찐 만삭 사진 -_-;;]

저녁을 먹고 나니 통증이 확실히 심해졌다. 걸을 때 너무 아파서 중간중간 멈춰 숨을 골라야 할 정도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원래 이 때 더 아팠어야 했는데 여행지에 왔다는 설렘과 도파민 덕분에 통각이 억제되어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야밤의 케이블카까지 야무지게 타고 숙소로 돌아왔다.

[출산 전 찍은 마지막 사진.. 케이블카에서]

숙소에서 통증은 더 심해졌다.

검색해보니 ‘가진통’이라는 게 있었는데,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당시 주수(34주 0일)에 진진통이 올 리 없다고 생각해서, 이 아픔은 틀림없는 가진통일 거라 믿었다. 그래서 쉬면 낫겠지 싶어 침대에 누워 있었지만, 고통은 점점 심해졌다.

비로소 위기감과 두려움을 느끼며 근처 병원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나 여수에는 산부인과 자체가 많지 않았고 일요일 밤이라 대부분 문을 닫은 상태였다.

그나마 문을 연 종합병원(응급실과 산부인과 모두 있는 곳)을 찾아 전화해 내 상황을 설명했더니, “차트가 없으면 받을 수 없다”는 말만 돌아왔다. 그럼 갈 수 있는 병원이라도 알려달라고 했더니, 순천 쪽 병원을 알아보라더라.

순천 쪽 늦게까지 하는 여성병원에 전화를 걸었더니, 이번엔 여수로 가 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_-;;

어이없는 병원 돌려막기에 고통과 두려움까지 겹쳐 눈에서 즙이 나왔다.

남편은 내가 원한다면 강남 세브란스로 데려가주겠다고 했고, 이 지역 병원에 대한 신뢰가 사라진 나는 동의했다. 이에 급히 세브란스 산부인과에 연락한 후, 바로 강남 세브란스로 출발했다.

통화 기록을 보니 여수, 순천 병원 통화는 밤 10시~10시 20분 사이, 세브란스 통화는 밤 10시 45분이네..

여튼..

차 안에서 진통은 더 심해졌다. 진통 앱으로 기록해 보니 간격이 3~4분 정도였음.

고속도로 중반부터는 정말 말도 못 하게 아팠다. 조수석에서 엉덩이를 들고 손잡이에 매달리며 힘을 주었는데, 어느 순간 손잡이에서 두둑 소리가 났다(부서지진 않음;;). 그 이후엔 헤드레스트를 붙잡고 버텼다.

정말 극한의 시간이었다..

(남편도 화장실도 못 간 채 달리느라 엄청 고통받았다고 함,,,)

서울 톨게이트를 지나면서부터는 고통이 한계에 달했다. 그 전까지는 아기가 내려오는 걸 억제하는 느낌으로 힘을 줬는데, 그리고 그럴 수 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반사적으로 낳는 방식으로 힘을 주게 되더라.

병원 근처에 도착했을 땐 아기 머리가 쑥 내려온 게 느껴졌다. 남편에게 “오빠, 아기 나올 것 같아..”라고 말했다.

여튼.. 병원에 도착하니 약 새벽 2시.

응급실 문으로 들어가며 연신 “살려주세요”를 중얼거렸다. 응급실의 수송용 침대에 눕자마자 양수가 터졌고, 따뜻한 물이 다리 사이로 흘렀다. 의료진이 아기 머리 보인다고 얘기하는 소리도 들렸다.

그대로 4층 산부인과로 이송됐다. 정신이 혼미했지만, 지금 기절하면 제왕절개라는 생각으로 이를 악물고 버텼다.

분만실로 옮겨졌고, 의사가 와서 힘을 주라고 했다. 중간에 회음부를 절개했지만 진통이 너무 심해 그건 전혀 아프게 느껴지지 않았다.

세 번 정도 힘을 줬더니 아기가 나왔다. 미끄러지듯 쑤욱 빠져나오는 느낌이었다.

9월 1일 새벽 2시 22분, 단비 태어나다..!

그 뒤로는 어렴풋한 기억뿐이다. 기진맥진한 상태에서 희미한 아기 울음소리가 들렸고(교수님 한 분이 아기를 examine 하는게 얼핏 보임), 추가로 힘을 줘서 태반을 낳았(?)고, 의료진이 배를 눌러 잔여물을 빼냈고, 회음부를 꿰맸다. 회음부 절개는 하나도 안 아팠는데, 꼬맬 때는 엄청 아팠다.

그 후 대기실로 옮겨져 의료진과 간단히 대화를 나눴고(병실 선택, 애기 잘 나왔지만 교수님이 더 살펴보고 있다는거, 여수에서 왔다는 얘기 등등), 조금 더 있다가 남편이 들어와 아기 사진을 보여줬고 수속 등 얘기를 나눴다.

잠시 뒤 병실로 옮겨졌고, 간호사 두 분이 도와 환복을 했다. 혼자서는 일어설 수 조차 없었음.

남편은 필요한 물품을 가지러 집에 갔고, 난 회사 메신저로 회사에 출산 소식을 알렸다.

다 끝내니 새벽 6시 반쯤..

출산과 진통의 여파 때문인지 피곤하면서도 각성된 상태라 잠이 오지 않았고, 그대로 아침을 맞았다.

여튼..

다시 쓰면서도 새삼 참 무식하고 용감한 출산기다 -_-;; 자동차에서 양수가 터졌다면.. 단비가 나왔다면.. 정말 위험했을 텐데 운이 좋았음.

단비는 그렇게 세상에 나왔다.

단비야, 미안해 ㅜㅜ

계속..

#단비

Sun [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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