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에 처음으로 혼자 강원랜드에 가서 도박을 해 봤던 후기를 기억을 되살려서 써 본다.
강원랜드로 갔던 건 순전한 충동이었다.
정선 부근을 혼자 여행했는데, 가려던 곤충테마파크 가기가 애매해졌고, 그래서 근처에 뭐가 있나 보다가 급 결정한 것.
강원랜드 부근은 유령도시였다. 11월경이라 성수기는 아니었겠지만, 한낮인데도 불구하고 길거리에 사람이 거의 없었다. 거리는 스산했고 동화책 소설책에서만 접했던 전당포가 곳곳에 즐비했다. 이외에도 누가봐도 불법 마사지샵으로 보이는 곳들, 그리고 고깃집이 주로 보였다. 고깃집은 강원랜드에서 한번 거하게 딴 사람들이 회식하기 위한 곳일지도 ㅋㅋ
전당포를 보며 오늘 도박에 돈이 털려서 내 차를 여기 맡기고 오게되는게 아닐까 하는 말도 안 되는 상상도 했다.
숙소는 라마다라는 곳이었다. 체인점이라서 여기로 예약했는데, 사람이 거의 없고 방값도 엄청 싸고 어두침침하고 무서웠다. 방에서 담배인지 방향제인지 모를 역한 냄새가 희미하게 났다.
숙소값은 아주 저렴했다. 비수기라서였겠지만, 도박장 근처라 자살 등의 사건이 많아서 그런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여튼 체크인 후 강원랜드로 출발했고, 도박비용 50만원을 출금했다.
하이원리조트에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주차장에서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가는 방향을 무지성으로 따라가니 바로 강원랜드 도박장이 나왔다. 우선 하이원리조트에 회원가입을 하고, 강원랜드 입장권을 구매한 후 입장했다.
사진 촬영이 금지라 내부 촬영은 못 했다 ㅜㅜ
어두컴컴하고 살벌하고 긴장되는 분위기 혹은 라스베가스같이 시끄럽고 정신없는 향락적인 분위기를 예상했는데, 도박장 내부는 생각보다 밝고 쾌적하고 건전했다. 아이들 없는 오락실 같은 느낌. 도박기계들이 컬러풀하고 귀여워서 무서운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다.
내부는 아주 광활했다. 창문이 없어서 시간의 흐름을 시각적으로는 체감할 수가 없게 되어 있었다.
천장도 엄청 높았는데, 천장에는 엄청나게 많은 감시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었다. 동그랗고 까맣고 맨들맨들거리는 것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게 마치 풍뎅이 같았다. 저 정도면 사각이 거의 없다고 보면 될 것이다.
소매치기가 무서워 소중한 현금 50만원이 든 힙색을 거의 안다시피 하고 들어갔는데, 아무도 내 짤짤이 50만원에는 관심이 없을 뿐더러 감시카메라와 곳곳의 요원들 때문에 물리적으로 소매치기해서 남의 돈을 털어가기엔 무리인 환경이었다.
처음 온 사람들을 위해 게임의 룰을 설명해주는 직원이 있다. 슬롯머신, 바카라 등의 룰을 생각보다 아주 친절하고 상세히 알려준다. 설명이 끝난 후, 무슨 클린도박 서약같은걸 하면 선물을 준대서 서약을 하고 핸드크림도 받았다.
음료는 무한대로 제공된다. 지금 잘 기억이 안 나지만, 주로 탄산음료, 매실음료, 식혜 같은 달달한 음료들이었다. 당 떨어지면 빨리 채우고 도박하라는 강원랜드의 설계 같았다.
음료 코너 바로 옆에는 카페가 있었는데, 이 카페는 직접 사 먹어야 하는 유료 카페였고 가격이 아주 비쌌다. 고메 미숫가루라는 메뉴가 만원 가량 했던 듯.
사람들 행색은, 나처첨 신기한 양 두리번거리는 a.k.a. 누가 봐도 뉴비도 있었고, 등산복같은 편한 옷을 입은 아줌마 아저씨들도 있었고, 듬성듬성한 흰머리와 허름한 복장과 풀린 눈을 한 폐인같은 사람도 있었고 꽤 다양했다. 폐인같은 사람은 계절이랑 안 맞는 두꺼운 옷을 입고 있었는데, 계절 구분 없이 상주하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슬롯머신 곳곳에는 눈이 풀린 채 앉아서 기계적으로 버튼을 눌러대는 사람들이 있었다. 주로 앞서 말한 폐인 같은 사람. 슬롯머신은 도박장에서 가장 많은 기계 중 하나였다. 나도 비어있는 자리 아무데나 착석해서 슬롯을 돌렸고, (역시나) 곧바로 돈을 잃었다. 나중에 들으니 거기 사람들은 정해진 자리에만 앉아 있으려고 하고, 비어 있는 자리들은 소위 ‘죽은 자리’라고 부른다고 한다. 슬롯머신은 어차피 전자기기라서 기기마다 확률에 차이가 있을 것 같지는 않은데.. 여튼 그랬다.
이후 바카라를 구경하고 룰렛(빅휠)을 했다.
하다 보니 50만원이 금방 태워졌다. 초심자의 운 따윈 없었다.
50만원을 날린 죄로 저녁은 고래밥과 우유로 때웠다.
솔직히 재밌긴 했다. 한 번 쯤 또 가도 좋을 것 같다.
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