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들 아기를 키우다 보면 ’50일의 기적’ 혹은 ‘100일의 기적’이 찾아온다고 한다. 50일/100을 기점으로 키우기가 더 힘들어지면 기적이 아니라 기절이라고 표현하기도..
여튼. 단비는 예정일보다 42일 일찍 태어났기 때문에, 생후 100일경이 되어서야 남들이 말하는 ’50일의 기적’을 겨우 체감할 수 있었다. 파충류 같던 모습에서 비로소 인간 아기의 모습으로 진화하고, 조금씩 수면 패턴이 잡히기 시작했던 때였다.
게을러서 블로그 기록이 조금 늦었지만, 지난 1월 말 드디어 단비의 150일, 교정일로 약 100일이 지났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단비에게는 또 한 번의 큰 변화들이 찾아왔다.
달라진 수면패턴
가장 먼저 수면 패턴이 완전히 바뀌었다. 이전에는 오전 내내 잠만 자던 단비가 이제는 아침에 눈을 뜨면 말초롱한 눈으로 세상을 구경하며 놀기 시작했다. 밤에 입면하는 시간도 한두시간 정도 뒤로 밀려났다. 이렇게 깨어 있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자연스럽게 낮잠 횟수와 간격도 재편성되었는데, 덕분에 ‘먹-놀-잠’의 굴레가 더욱 선명해졌다.
이 변화는 나에게 예상치 못한 복병이 되기도 했는데, 새벽 수유를 전담하는 남편과 오전에 바통 터치를 하고 아기방에서 쪽잠을 자던 나의 루틴이 깨졌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단비가 오전 내내 자 준 덕분에 나도 부족한 잠을 보충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오전 수면 보충이 여의치 않아졌다.
그래도 아침 햇살을 맞으며 동그란 눈으로 나를 쳐다보는 단비가 너무 사랑스러워, 육체적인 피로 쯤은 기꺼이 견딜 수 있게 된다.
달라진 울음소리
울음소리의 스펙트럼도 넓어졌다.
전에는 “응애! 흥애! 앵애!” 수준의 단순한 울음이었다면, 이제는 자기주장이 확실해졌다.
“응애 응!” 하고 끝에 힘을 꽉 주기도 하고, “웅가! 아이야! 에이야!” 같은 변주도 해 댔다. 특히 “아이야! 에이야!”는 주로 배고플 때 입을 크게 벌리며 내는 소리인데 이게 꽤 귀다. 또 목에 힘을 주어 “아아아아아!” 하고 쇳소리를 내며 소리를 지르기도 한다. 누워서 애처로운 콧소리로 “흥- 응- 앵-” 소리를 내기도 하는데, 그럴 때면 안아주고 싶은 마음을 주체할 수가 없다.
이 새로운 소리들이 대견한 한편으로, 예전 신생아 시절의 “응애” 소리가 벌써 그립기도 하다. 예전의 아기 소리를 영상으로 더 많이 남겨두지 못한 것이 참 아쉽다.
구토의 감소
사실 가장 대견하고 기쁜 변화는 토하는 횟수가 드라마틱하게 줄었다는 점이다. 이때까지 단비는 자다 토하고, 놀다 토하고, 먹다가 토하는 게 일상이었다. 하루에 옷을 두세 번씩 갈아입히는 건 일도 아니었다. 단비는 안 그래도 일일 수유량이 400대 후반으로 또래의 절반 수준인데, 애써 먹인 분유를 분수토로 쏟아낼 때마다 정말 많이 속상했다. 그런데 교정일 100일을 기점으로, 정신차려보니 어느 순간부터 토가 눈에 띄게 줄어있었다. 소화 기관이 이제야 제 기능을 하며 성숙해지고 있다는 신호 같고, 나중에 일반 분유로 갈아탈 수 있을 만큼 튼튼해지고 있다는 뜻인 것 같아 무척 안심이 된다.
첫니의 등장
교정일 110일쯤 되었을 때, 단비의 아랫잇몸이 부풀듯 부어있고 안에서 하얀 이빨이 올라오는 것을 육안으로 볼 수 있었다. 보통 이앓이는 6개월 전후로 시작된다는데, 일일수유량도 많지 않은 단비에게 교정일 기준 4개월 남짓한 시기에 이가 올라오니 무척 놀라웠다.
기쁨도 잠시, 무시무시한 이앓이가 함께 찾아왔다. 놀 때 칭얼거리는 빈도와 강도가 커졌고, 낮잠이나 밤잠을 재울 때는 악귀 모드로 돌변해 마구 성질을 부리고 울음을 터뜨렸다. 잇몸이 간지럽고 아픈지 얼굴을 부비며 짜증을 내고 소리를 지르고 몸을 뒤트는데, 한창 이 악귀모드일 때는 나도 정말 돌아버릴 지경이다.
앞니보다 어금니, 송곳니의 이앓이가 훨씬 심하고 오래간다던데.. 벌써 걱정이다.
미안함과 고마움 사이
사실 단비를 돌보는 일은 매일 똑같은 일상의 반복이었다. 특히 수유 거부가 심한 단비와 매번 씨름하다 보면 하루가 다 가버리는 느낌이라, 정작 아기와 제대로 놀아주지 못했다는 자책이 들 때가 많았다.
그 영향인지 단비의 발달은 교정일을 고려해도 조금 느린 편이다. 글을 쓰는 지금도 단비는 아직 터미타임을 성공하지 못했고, 고개를 가누는 것도 힘겨워한다. 남들은 뒤집기를 고민할 시기에 여전히 고개 들기에 전전긍긍하고 있으니 마음이 조급해지기도 한다. 단비의 발달이 느린 것이 월령에 맞는 놀이 활동을 제대로 해주지 못한 내 탓인 것만 같아 자책감이 들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조금씩 변화가 생기는 것은 참 신기하고 대견하다. 수유 양에만 급급하느라 단비의 발달과 놀이를 세심하게 살펴주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함은 크지만, 단비는 본인만의 속도로 차근차근 인간 아기가 되어가고 있다. 조급해하지 않고, 단비의 속도로 부디 건강하게 자라주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