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리사 시험 합격 후 이듬해 2차 출제 검토위원에 갔다왔었다.
내가 검토한 것은 선택과목인 데이터구조론 과목이다.
내 데구 합격점수는 69.6점이었다.
보통 각 과목의 득점 순으로 2명을 검토위원에 부른다. 그 해 데이터구조론 통계를 보면 70점대 0명, 80점대 2명이었기 때문에 난 명백히 3등이었는데, 80점대 두 명이 모종의 이유로 불참한 덕분(?)에 갈 기회를 얻었다.
가자마자 핸드폰 등 통신기기를 반납하는 등의 절차를 거친 후 검토를 시작했다. 검토 과정에 흥미로운 부분들이 있었지만 그건 구체적으로 쓰면 안 될 것 같아서 안 쓰겠다. 다만 검토시설 복도 벽에 몇년 전 오류로 결정났던 제어공학 문제가 걸려있었다는 거 하나는 쓰고 싶다. 다시는 이런 출제 실수를 하지 말자는 <의지>,,, 제어 와신상담 ㄷㄷㄷ
라떼는 선택과목이 pass/fail 제도가 아니었기 때문에 많은 수험생들이 선택과목간 형평성에 대한 불만을 가지고 있을 때였다. 매 해 시험 문제나 형평성, 난이도 차이, 채점에 대한 논란이 주기적으로 있었다. 데이터구조론도 초고득점을 주는 과목은 아니었기 때문에, 나 또한 수험생 간 만연한 불신의 정서를 막연히 공유하고 있었다. 따라서 출제를 그렇게 열심히는 하지 않을 것이라는 선입견도 조금은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검토와 출제 환경이 사뭇 진지했기 때문에 이 선입견은 바로 깨졌다. 가볍고 빠르게 진행될 거라고 예상했던 검토는 문제풀고, 피드백하고, 수정된 문제 풀고, 다시 또 피드백 하는 과정에서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소요됐다. 의견 공유와 피드백이 활발히 오갔고, 특히 산인공 담당자 분이 엄청난 주인의식을 가지고 진행해주셨다.
여튼.
선택과목 20여과목+법과목 3과목(그런데 특허/상표법은 다른 날에 입소해서 격리되므로 사실상 법과목은 민소 1과목)의 검토가 필요하며 각 과목 당 2명의 검토위원을 부르므로, 약 40명 가량의 동기들이 한 자리에 모이게 된다. 한 해 합격자가 200명이니 합격생의 약 1/5가 응집하게 되는 것이다. 연수원에 다시 돌아온 기분이 들 수 밖에 없다. 한껏 기쁘던 연수원 시절에 비해 찌들어진 동기들을 만나 반갑게 인사하고 근황을 공유했다.
긴 검토가 끝난 후에도 보안상의 이유로 시험이 종료되기 전 까지는 나갈 수가 없다. 우리는 격리수용 된 채 시험일(일요일)까지 검토기관에 체류했다.
출제했던 교수님들도 나가지 못 하는 건 마찬가지. 교수님들과 변리사들은 나이대로 보나 포지션으로 보나 물과 기름처럼 섞이기 어려운 존재다. 초반에야 같이 출제/검토했던 동료의식으로 호의적인 대화를 주고받았지만, 곧 두 집단은 분리되었다.
가장 좋은 시청각실은 교수님들이 차지했다. 갈 곳 없던 우리는 헬스장이나 로비나 각자의 방 같은 곳에 모여서 수다를 떨었다.
아싸인 나는 처음에는 동기들이 많이 모인 그룹에 가서 인사를 나눴지만, 이내 따로 떨어져 나와 방에 틀어박혔다. 같이 틀어박힌 여자 4명이서 TV를 보고 수다를 떨고 재밌게 놀았다. 읽으려고 챙겨 온 책은 가방 밖으로 나오지도 못 했다.
항상 지니고 다니던 핸드폰이 곁에 없으니까 이상하고 어색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근황 공유를 하는 과정에서도 사진첩의 사진을 보여주고 싶은 순간들이 있었는데, 폰을 반납하는 바람에 그걸 못 하게 된 것도 아쉬웠다.
여튼.. 아침점심저녁으로 사육을 당하면서 잘 쉬다 퇴소했다.
재밌는 경험이었다.
끗